1. 자아정체감의 개념
사춘기부터 시작해 청년기에는 나는 누구이며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등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골똘히 이 문제는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고민스러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쉽게 발견되지 않으므로 갈등과 불안을 겪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은 곧 자기 탐색과 자기 확립의 과정으로서 자아정체감이 형성됩니다.
자아정체감이란 처음으로 에릭슨이 체계적으로 사용한 개념으로서 그 자신도 한 마디로 개념화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여러 저서에서 사용한 의미로 미루어 대체로 다음과 같은 개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자아정체감은 개인적인 독특성의 의식적 지각이며, 성격의 연속성이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무의식적 노력을 뜻하며, 동시에 집단구성원과 그들의 이상 또는 이념과의 결속성 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정체감이 강하다는 것은 비록 타인과 같은 가치나 동기 또는 흥미 등을 가졌다 해도, 타인과는 다른 사람이며, 독특한 개인으로서 자기 일관성 또는 전체성을 지니려고 애쓰게 됩니다. 이러한 노력은 곧 자기 통합성을 수립하려는 노력으로서 타인과 분리되어 자기의 통일성을 확립, 유지하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아정체감이란 오랜 기간에 걸쳐 자기 지각적 일관성을 가지려는 노력에 의하여 뚜렷이 확립되는 것이지, 어느 특정순간이나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자아정체감이란 청년기의 중요한 발달과업으로 인정됩니다. 따라서 어느 문화에서든지 자아정체감의 확립은 가장 중요한 청년기의 과업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에릭슨의 이론에 의하면 외현적인 자아정체감 위기는 청년 후기에 나타나지만, 정체감이란 청년기에 이르러 문득 형성되는 것도, 청년기까지 완료되는 것도 아니며, 일생 동안 계속 발달되는 것입니다. 다만 자아정체감의 형성을 의식하지 못할 뿐입니다.
2. 청년기에 정체감 위기가 나타나는 이유
청년기가 되어 정체감 위기가 나타나는 이유는 몇 가지로 설명이 됩니다.
첫째, 바로 전 단계부터 성적 성숙과 신체발달이 급격하여, 내적 충동의 질적 변혁이 초래되는데, 그 결과 원본능, 자아 및 초자아의 균형이 일그러지게 됩니다. 따라서 심리적 역동을 새로이 조정하고 통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어, 결국은 정체감의 위기가 도래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춘기에는 미처 발동되지 못했거나, 또는 잠시 승화시킬 수 있었던 심리적 충동들도 청년기에 이르면 심한 갈등을 야기시키고 청년의 주의를 완전히 사로잡게 됩니다. 이런 위기에 자아의 일관성 내지 전체성, 통합성의 확립이 요청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사춘기와 청년기에 이르게 되면 아동기까지의 동일시가 유용성을 상실하게 되거나, 유용성이 극히 제한되어서 자아정체감의 형성 또는 확립이 심각하게 됩니다. 자아정체감의 형성에는 동일시라는 심리적 기제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동일시들이 그저 단순히 누적되는 것만으로는 완전히 기능할 수 있는 인격이 확립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청년이 되면 아동기까지의 여러 동일시들 중에서 계속적으로 유용한 것을 선택하게 되고, 나머지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거부하거나 억제하게 되어, 청년기에 새로 이룩한 동일시와 동화시키거나 새로운 구성을 하게 됩니다. 사실 이런 이유로 하여 참된 정체감의 형성은 지금까지의 동일시의 유용성이 없어지는 데서 시작된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셋째, 자아정체감의 형성과 확립에는 청년기 전 단계까지의 모든 중요한 동일시들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청년기까지 계속 획득되어 온 동일시들을 일관성 있고 응집적인 고유의 전체로 통합하는 능력이 필수적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동일시들을 통일되고 전체적이며 일관성 있는 체제로 결합시키지 않으면 생의 방향이 결정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곧 정체감의 혼미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써 청년기에는 그들의 내적 변혁과 외적인 사회적 상황에서 자기 역할을 일관되고 통일성이 있게 수행해 나아가려는 관심과 노력이 요구됩니다.
넷째, 청년기의 발달특징으로 볼 때, 타인에게 자신이 어떻게 비치는가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지금까지 습득한 모든 것을 당대의 이상적 원형과 결합시키려고 애씁니다. 이런 시도는 곧 과거의 동일시에 의문과 회의를 제기하게 되고, 또 과거의 동일시가 현재 및 미래까지 연속성을 지니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게 됩니다. 이와 같은 의문과 회의는 곧 영원불변의 현상이나 우상을 설립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지만, 청년들은 아직 그런 준비도 능력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성역할, 직업역할 및 자아정체감을 탐색하는 데 있어 자기 표준화의 시기가 곧 청년기인데, 이 많은 심각한 발달과업을 수행하기는 대단히 힘이 듭니다. 자기 이상을 단번에 성취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적 요구와 능력의 부족 사이에서 갈등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이유는 설명되는 청년기의 자아정체감 위기를 거의 모든 문화에서는 인정하고 또 관용스럽게 지켜봅니다. 즉 심리사회적 유예기를 설정해 주고 있을 정도로 자아정체감의 형성은 청년기의 중요 발달과업으로 인정되는 것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청년들은 갈등과 적응곤란을 나타낼 만큼 이 유예기를 겪어나가는 데 몹시 힘들어하며, 정체감 혼미 속을 헤매다가, 더러는 무정체감에 빠지는 경우로 있습니다. 즉 청소년의 비행이란 다름 아닌 긍정적 자아정체감의 형성이 빗나간 경우라 하겠습니다.